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센트럴 파크 (문단 편집) == 역사 == [[1856년]] [[조경가]]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 조경가란 말을 처음으로 쓴 사람이다. 자신의 직업에 Landscape architect라고 썼으며 이것을 한국에서 번역한 것이 조경가이다. 센트럴 파크 설계 당시 [[정원사]]란 용어가 오로지 정원을 관리하는 직업이란 좁은 의미가 쓰인다는 것을 인식하고 공원의 다양한 전문성을 대변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전문인으로서의 조경가라는 직명을 사용했다. 이로 인해 옴스테드가 조경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했다.]와 건축가 칼베르 보가 설계했다. 공원이 상당히 광활하다보니 공원을 기준으로 남부와 북부의 [[치안]] 상태도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북쪽 끝은 그 유명한 '''[[할렘]]'''이고, 남쪽은 뉴욕 최고의 부촌인 미드 타운(Mid Town)과 어퍼웨스트사이드(Upper West Side)와 어퍼이스트사이드(Upper East Side)가 있다. 남쪽 끝은 '''뉴욕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뉴욕시청이 소재하고 있으며 뉴욕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 지역인 5번가에 맞닿아 있으며 각종 회사들(주로 대기업 본사)의 고층 건물들 및 음악관 및 미술관 등이 밀집해 있다. 공원이 조성되기 전에는 딱히 정해진 용도가 없는 [[습지]]였다. 땅은 뉴욕시가 소유하고 있었으며, 여기에 무허가 채석장 및 가축을 기르는 농장, 저소득층의 판자촌들이 널려 있었는데, 1850년 저널리스트인 윌리엄 브라이언트가 <[[뉴욕 포스트]]>지에 이 땅에 공원을 건설하자는 캠페인을 기고한 것을 계기로 1856년 조경가인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와 칼베르 보(Calvert Vaux)가 뉴욕시에서 땅을 사들여 공원으로 조성했다. 센트럴 파크가 위치한 맨해튼의 도시설계자였던 로버트 모지스가 이 구역을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만들고자 설계에 매진하던 도중, 누군가가 조언을 했다고 한다. >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 > ----- >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 결국 삶의 휴식처를 넣지 않으면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질환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견이다. 이러한 조언을 수용한 옴스테드는 이 버려진 습지를 일터가 아닌 휴식처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100,000수레의 돌과 흙이 동원되었으며, 500,000그루가 넘는 나무와 관목을 심고 언덕과 풀밭, 호수까지 만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